[스마트팜 시대의 농업 혁신]

습도 자동 제어의 함정: 증산과 응결을 구분해야 생장률이 올라간다

ever-blog 2025. 4. 21. 16:51

스마트팜 운영에서 ‘온도’와 더불어 가장 많이 다뤄지는 변수는 바로 ‘습도’다. 많은 운영자들이 설정값을 65~85%로 유지하며 안심하지만, 실상은 습도 수치가 ‘같다’고 해서 생장 조건이 안정된 것은 전혀 아니다.

 

습도란 단순히 공기 중 수증기의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물이 물을 뿜어내는 속도(증산)와 외부에서 수분이 맺히는 현상(응결)의 차이를 말한다.

 

문제는 자동제어 시스템이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 채 ‘습도가 낮으면 가습, 높으면 환기’라는 일차원 반응만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작물의 증산이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공기 중 습도가 낮아 가습을 시작하거나, 반대로 잎 표면에 응결이 생겼음에도 시스템은 ‘습도가 적정’하다고 판단해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 글에서는 습도 제어가 왜 항상 오작동하는가, RH(상대습도)라는 숫자만으로는 생장 환경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증산 속도 기반의 실시간 제어 구조, 응결 방지형 공기 순환 설계, 습도 보정을 위한 시간대별 설정법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스마트팜에서 진짜 정밀함은, 숫자를 얼마나 정확히 읽느냐가 아니라, 숫자가 보여주지 않는 조건을 어떻게 감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목차

 

Ⅰ. 습도 70%는 늘 같은 조건인가? – 숫자는 같지만, 의미는 다르다

습도 수치가 70%라고 해도, 그 상태가 생장에 유리하다는 보장은 없다.

 

오전과 오후, 일사량이 다를 때, 온도가 다를 때, 작물의 생장 단계에 따라 ‘70%’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오전 9시경 일사량이 막 올라가는 시점에 70%라면 작물의 증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구간이지만, 오후 4시경 일조가 약해질 무렵 같은 70%는 공기 내 수증기가 포화에 가까워지는 상태일 수 있다.

 

RH(상대습도)는 공기 온도에 따라 변하는 수치이므로, 실제 증산과 응결 조건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25℃에서 70% RH와, 15℃에서 70% RH는 공기 중 수증기 총량이 2배 가까이 차이 날 수 있다.

 

그러나 자동화 시스템은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단순히 수치만 같다면 동일한 환경이라고 판단한다.

 

이것이 바로 ‘습도는 맞는데 작물이 시든다’, ‘습도는 맞는데 곰팡이가 생긴다’는 현상의 근본 원인이다.

 

Ⅱ. 증산량 없는 고습은 오히려 생장 저해 조건이다

작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습도는 단순히 ‘공기가 촉촉한 상태’가 아니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작물이 충분히 증산할 수 있을 만큼의 습도-온도 균형, 즉 VPD(증기압차) 조건이다.

 

습도가 너무 높으면 기공이 닫히고, 증산이 멈추며, 뿌리로부터의 수분 흡수도 줄어든다.

 

이는 곧 생장 속도의 저하로 이어진다.

 

반대로 습도가 너무 낮으면 과도한 증산으로 인해 잎 끝이 타거나 조직 내 수분이 고갈되는 생리장애가 발생한다.

 

스마트팜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습도는 70~80%로 유지한다”는 기본 설정을 걸지만, 실상은 ‘언제 70% 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오전 10시~오후 2시 사이엔 상대습도를 60~65%로 유지하여 증산을 유도하고, 그 외 시간대는 75~80%로 유지해 기공 폐쇄를 방지하는 ‘시간대별 증산 곡선’이 필요하다.

 

정밀 제어는 고정된 수치가 아니라, ‘시간과 조건에 따라 유동하는 기준’을 시스템에 설정하는 것이다.

 

Ⅲ. 응결은 보이지 않는 병해 유발자 – 습도 제어보다 공기 순환이 우선

응결은 온실 내부의 공기가 갑자기 냉각되거나, 특정 구조물·잎 표면에 이슬이 맺히는 현상이다.

 

이때 공기 중 RH는 낮을 수도 있다.

 

즉, ‘습도가 낮은데 곰팡이가 생긴다’는 현상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응결은 병원균의 확산을 극도로 빠르게 만든다.

 

특히 밤 시간대, 외기 온도 하강 → 내부 온도 하강 → 수증기 응결 → 잎 표면 수막 형성 → 곰팡이 발생, 이 사이클은 매우 짧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스템은 RH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공기 흐름이 멈춰 있음에도 ‘습도는 낮다’고 판단해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다.

 

이를 막기 위해선 반드시 응결 가능성이 높은 시간대(새벽 3~6시)에 온실 내부 팬을 자동으로 미세 작동시켜 공기 흐름을 유지해야 하며, 센서 위치도 잎 표면 인접부(30cm 이내)에 배치해야 한다.

 

습도 제어란 가습기와 환풍기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물방울이 맺히지 않도록 공기를 흐르게 만드는 설계’가 핵심이다.

 

Ⅳ. 습도 자동화 설정의 정석 – 수치가 아닌 맥락으로 판단하라

정확한 습도 제어는 RH 수치를 기반으로 하되, 반드시 다음의 변수들과 함께 연동되어야 한다:

  1. 온도 – 같은 습도라도 온도에 따라 증산 가능성이 다르다
  2. 일사량 – 햇빛이 들어오는 시간엔 증산이 활발하므로, 상대습도 하향 보정
  3. 작물 생장 단계 – 초기엔 고습이 유리, 후기엔 저습+공기 흐름 필요
  4. 시간대 – 오전/오후/야간에 따라 적정 습도범위는 달라야 한다
  5. VPD 연동 – 증기압차를 기준으로 ‘실질 증산 가능 상태’ 분석

이 조건들을 자동화 알고리즘에 입력하고, RH 단일 수치가 아닌, 조건 간 복합 계산으로 보정값을 도출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스마트팜의 진짜 습도 제어는 ‘얼마나 맞췄나’가 아니라, ‘언제, 왜, 어떻게 바꿨는가’를 기록하는 시스템 설계에서 시작된다.

 

결론 – 습도는 물이 아니라 흐름이다. 증산이 없으면, 생장도 없다

습도를 맞췄다고 해서 작물이 자라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작물이 물을 뿜어내고, 뿌리로부터 물을 끌어올리는 ‘흐름’이 만들어졌느냐이다.

 

습도는 그 흐름의 조건 중 하나일 뿐이며, 실제로 중요한 건 증산이 일어나는가, 응결이 발생하지 않는가, 이 두 가지다.

 

정밀 제어란 수치 유지가 아니라, 생리적 리듬을 추적하고 맞추는 일이다.

 

자동화 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물방울이 맺히는 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병해는 멈추지 않는다.

 

습도는 촉촉한 공기가 아니라, 끊김 없는 생장 흐름을 유지하게 하는 ‘투명한 구조물’이어야 한다.

 

진짜 스마트팜은, 물이 아니라 ‘공기 중의 물’까지 이해하는 농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