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인류는 언제부터 시간을 인식했을까. 그리고 왜 시간을 ‘신’으로 그리게 되었을까. 고대인에게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 힘이었다. 해가 뜨고 지는 주기, 별자리가 이동하는 흐름, 계절이 변하고 생명이 자라고 시드는 과정은 모두 일정한 순환을 따랐고, 이 반복은 곧 신비한 질서로 느껴졌다. 고대인은 이 질서를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의지를 가진 존재, 즉 ‘신’으로 인격화했다. 그리고 그 신은 각 문명에서 독특한 얼굴을 가지게 된다. 어떤 문명에서는 시간의 신이 창조와 질서를 대표했고, 어떤 곳에서는 죽음과 심판을 관장했으며, 어떤 문화에서는 순환과 재생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어떤 이미지로 묘사했는가가 곧 그 문명의 세계관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수메르, 이집트, 인도, 그리스의 대표적인 시간 신을 비교하며, 고대 문명이 ‘시간’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냈는지를 천문학적, 신화적, 철학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Ⅰ. 수메르 – 달신 ‘난나’와 시간의 질서
수메르 문명에서 시간은 ‘달’을 통해 측정되었다. 그리고 그 달을 주관하는 신이 바로 ‘난나(Nanna)’였다. 그는 달의 주기를 따르는 모든 시간의 흐름을 관리하며, 농경과 제사의 시기를 결정짓는 존재였다. 난나는 하늘의 신 안(An)과 대지의 여신 키(Ki)의 아들로 태어나, 밤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의 또 다른 이름 ‘신(Sin)’은 아카드어에서도 그대로 이어졌고,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달의 신 = 시간의 신’이라는 공식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난나가 시간의 신으로 기능한 이유는 명확하다. 고대 바빌로니아는 철저히 달력을 기준으로 시간과 계절을 측정했으며, 달의 변화는 신의 명령처럼 정확히 반복되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 월식 등은 모두 중요한 제사의 기준이 되었고, 그때마다 난나에게 경배를 올렸다. 그는 전쟁을 명하는 신도, 창조의 신도 아니었지만, 그의 존재는 ‘질서 있는 반복’이라는 개념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간 체계를 구성하는 핵심이었다. 난나는 엄격한 주기를 지닌 시간의 상징으로, 밤하늘의 리듬을 몸소 보여주는 신이었다.
Ⅱ. 이집트 – 태양신 ‘라’, 시간 그 자체의 순환
이집트 문명에서 시간은 ‘태양의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태양신 ‘라(Ra)’가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동쪽 지평선에서 떠올라 하늘을 가로지르고, 서쪽에서 사라진 뒤에는 지하 세계(두아트)를 지나 다시 부활하는 주기를 영원히 반복하는 존재였다. 이 여정은 단순한 하루의 흐름이 아니었다. 이집트인들은 하루의 시간 구조 자체를 ‘라의 몸’으로 인식했고, 그의 여행은 생명과 죽음, 어둠과 빛의 순환을 담고 있었다. '라'는 창조의 신이자 시간의 본질이었으며, 그의 반복되는 순환은 시간의 ‘영원한 현재’를 보여주는 철학적 구조였다. 특히 동지와 하지, 춘분과 추분처럼 태양의 길이가 달라지는 절기마다 라의 힘이 강해졌다가 약해지는 시기라고 보았고, 그에 맞춰 국가적 제례가 진행되었다. 이집트에서 시간은 직선적인 흐름이 아닌, 원형으로 되풀이되는 것이며, '라'는 그 원형을 끝없이 유지하는 주체였다. 죽음조차도 라의 여행의 일부였고, 부활은 시간의 귀환이었다. 이처럼 라는 시간의 신이라기보다 시간 그 자체였으며, 그의 얼굴은 바로 해가 빛날 때마다 드러나는 ‘보이는 질서’였다.
Ⅲ. 인도 – 파괴의 시간 ‘칼라’, 윤회의 심판자 ‘야마’
인도의 시간 개념은 그 어떤 문명보다도 철학적이고 복합적이다. 시간은 선형도, 단순한 반복도 아닌, 거대한 우주 주기의 흐름으로 이해되며, 이를 관장하는 존재가 바로 ‘칼라(Kāla)’이다. 칼라는 ‘시간’ 자체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를 신격화한 존재이기도 하다. 칼라는 파괴와 죽음의 신 ‘시바’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며, 시간은 곧 파괴의 힘으로 간주된다. 시간이란 결국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칼라는 자비도, 멈춤도 없는 존재로, 우주와 생명을 끝없이 소멸시킴으로써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게 만드는 순환의 도구다. 반면 ‘야마(Yama)’는 죽은 자를 심판하는 신이자, 시간의 한계를 경험하게 만드는 존재다. 그는 맨 처음 죽음을 맞이한 인간으로서 ‘시간을 초월해 있는 자’이며, 모든 생명은 그에게로 돌아간다고 믿어졌다. 인도에서는 시간이 곧 카르마(업)의 누적이자, 윤회라는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굴레로 여겨졌고, 이를 관장하는 신들이 바로 칼라와 야마였다. 이들은 우주의 법칙이자,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흐름의 상징이었다.
Ⅳ. 그리스 –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두 얼굴의 시간
고대 그리스에서 시간은 이중적인 개념을 가졌다.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로, 연속적이고 양적으로 측정 가능한 시간이다. 또 하나는 ‘카이로스(Kairos)’로, 질적이고 기회적인 순간의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를 제거하고 왕권을 찬탈한 티탄이며, 결국 자신의 자식들을 두려워하여 삼키는 잔혹한 존재로 묘사된다. 이는 시간의 불가역성, 즉 누구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시간이 결국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는 철학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는 낫을 들고 있으며, 이것은 수확의 도구이자 파괴의 상징이다. 반면 카이로스는 기회의 신으로, 단 한 번만 다가오는 순간을 상징한다. 그는 이마에만 머리카락이 있고, 뒤에는 없다. 이는 ‘기회가 앞에서 올 때 잡지 않으면, 지나가버리면 붙잡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이처럼 그리스에서는 시간을 하나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수량적 흐름과 질적 의미의 충돌로 인식했다. 크로노스는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지만 동시에 파괴하는 신이고, 카이로스는 인간에게 도달하는 신적 개입의 찰나였다. 이 두 시간 신은 그리스 철학의 핵심 구조인 ‘질서 vs 가능성’, ‘운명 vs 선택’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결론
고대 문명이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개념을 어떻게 다뤘는지를 살펴보면, 각 문명이 어떤 세계를 살아냈는지가 드러난다. 수메르의 ‘난나’는 시간을 반복과 예측 가능한 구조로 만든 신이었고, 이집트의 ‘라’는 시간의 영원한 순환을 빛과 어둠으로 구현한 존재였다. 인도의 ‘칼라’와 ‘야마’는 시간의 파괴성과 윤회의 구조를 담아낸 상징이었으며, 그리스의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시간의 양적 흐름과 질적 개입이라는 이중적 현실을 보여주었다. 이들 시간의 신은 단순한 신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인간이 하늘을 통해 이해하고자 했던 가장 깊은 질문의 형상화였다. ‘시간은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었나’라는 질문에 대한 고대인의 대답은 하나다. 그 얼굴은 곧 우주의 얼굴이자, 인간 자신의 얼굴이었다. 시간은 하늘의 리듬이자 생명의 숨결이었고, 고대인은 그 흐름 속에서 신을 보고, 죽음을 배우며, 삶을 조율했다. 시간은 그 자체로 신이었고, 신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존재의 다른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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