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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천문과 시간의 과학]

고대 우주 창조 신화 비교: 혼돈에서 질서로

서론

“우주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이 질문은 단지 현대 과학의 탐구 대상이 아니다. 수천 년 전 고대인들 또한 이 물음에 대해 치열하게 사유했고, 각 문명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주의 시작’을 상상하고 정리했다. 그것이 바로 우주 창조 신화, 즉 코스모고니(Cosmogony)이다. 고대의 창조 신화는 단순한 전설이나 종교적 환상이 아니다. 이 신화들 속에는 해당 문명의 시간관, 자연 이해, 사회 질서, 신의 역할, 인간의 존재 의미 등이 통합적으로 녹아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에 속한 문명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혼돈에서 질서로의 전환’을 우주의 출발점으로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수메르, 이집트, 인도, 중국, 그리스 등 대표 문명의 우주 창조 신화를 비교하고, 그 안에 담긴 질서 개념, 신의 역할, 시간의 흐름, 자연에 대한 철학적 상징성을 분석함으로써 고대인들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탐색한다.

고대 우주 창조 신화 비교

Ⅰ. 수메르 – 바다의 신이 세계를 나눈 이야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창조 신화인 ‘에누마 엘리시(Enuma Elish)’는 기원전 18세기경의 점토판 서사시로, 혼돈의 바다에서 신들과 세계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묘사한다. 태초에 존재했던 것은 아브주(Apsu, 담수의 신)와 티아마트(Tiamat, 염수의 여신)로, 이들은 형태 없는 물의 혼돈 상태였다. 그 속에서 여러 젊은 신들이 태어났고, 세대 간의 갈등이 일어난다. 결국 신 마르둑(Marduk)이 티아마트를 물리치고 그녀의 시신을 절반으로 나누어 하늘과 땅을 만든다. 티아마트의 눈은 태양과 달이 되고, 피는 강이 되며, 뼈는 산맥이 된다. 이 구조는 우주가 폭력적 충돌과 질서화의 결과로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신은 자연을 통제하고 세계를 구조화하는 존재이며, 인간은 그 신의 창조 행위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로 이해된다. 이 신화는 고대 수메르-바빌로니아 문명이 세계를 본 방식, 즉 세계는 본래 무질서했고, 신의 개입을 통해 의미 있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철학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Ⅱ. 이집트 – 태양과 바람이 만든 질서의 세계

고대 이집트의 창조 신화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헬리오폴리스 신화에 따르면 태초의 세계는 ‘눈(Nun)’이라 불리는 혼돈의 바다였다. 이 바다는 형태도 방향도 없는 무한한 물질의 공간이었고, 시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이 무형의 바다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난 존재가 창조신 아툼(Atum)이다. 아툼은 자신의 의지로 두 신, 슈(Shu, 공기)와 테프누트(Tefnut, 습기)를 낳고, 그들로부터 하늘과 땅의 구분이 시작된다. 이후 게브(땅)와 누트(하늘)가 태어나 세계가 형성된다. 이집트 신화는 수메르처럼 폭력적 충돌이 아닌, 점진적인 구분과 분화를 통해 우주가 형성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이 모든 창조 과정은 태양의 순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라(Ra)의 매일 반복되는 죽음과 부활은 세계의 유지가 끊임없는 질서 속에서 이뤄진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이집트인은 우주의 창조를 단발적인 사건이 아닌 지속적 균형 유지의 과정으로 이해했다.

Ⅲ. 인도 – 신의 몸이 희생되어 만들어진 세계

인도 베다 문헌에 등장하는 창조 신화는 다른 문명과는 전혀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리그베다』에 따르면, 태초에는 ‘푸루샤(Purusha)’라 불리는 거대한 우주적 인간이 존재했고, 신들이 그를 희생 제물로 삼아 세계를 창조한다. 그의 입은 브라만(성직자), 팔은 크샤트리아(전사), 허리는 바이샤(상인), 발은 수드라(노동자)가 되었으며, 그의 눈은 태양, 호흡은 바람, 머리는 하늘, 발은 땅이 되었다. 이 신화는 세계가 하나의 전체였던 존재의 ‘분할’과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상을 담고 있다. 인도에서는 이 구조를 사회 제도에도 적용하여, 카스트 제도의 신성한 기원을 설명하는 논리로 사용했다. 이처럼 인도의 우주 창조는 물리적 기원만이 아니라 윤리적·사회적 구조의 정당성을 함께 선언하며, 세계는 희생을 통해 존재하고, 그 희생은 곧 질서를 유지하는 제사적 행위라는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다.

Ⅳ. 중국 – 기운의 흐름이 만든 세계의 몸

중국의 고대 창조 신화 중 ‘반고(盤古)’ 신화는 질서 있는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자연 철학적으로 설명한다. 최초의 우주는 알처럼 둥근 형태의 혼돈 상태였고, 그 속에서 잠자고 있던 거인 반고가 깨어난다. 그는 도끼로 우주의 알껍질을 갈라 가벼운 기운(양기)은 하늘로, 무거운 기운(음기)은 땅으로 내려가게 만들며, 이후 하늘과 땅이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수천 년간 자신의 몸으로 떠받친다. 반고는 죽은 뒤에도 자신의 몸을 자연의 일부로 바치는데, 그의 눈은 해와 달이 되고, 숨결은 바람이 되며, 혈액은 강, 뼈는 산, 살은 대지가 된다. 중국 신화는 세계의 창조를 기운의 변화와 흐름, 자연의 순환 속에서 설명하며, 창조란 ‘신적 개입’보다는 ‘자연의 내재적 변화’라는 인식이 중심이다. 이는 후대 음양오행 이론과 ‘천인합일’ 사상으로 발전하며, 인간과 자연, 우주는 하나의 통합된 유기체라는 철학을 형성하게 된다.

Ⅴ. 그리스 – 카오스에서 탄생한 질서와 투쟁의 신들

그리스의 우주 창조 신화는 다른 문명보다 더 극적으로 서사화되어 있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Theogony)』에 따르면, 우주의 시작은 ‘카오스(Chaos)’라는 무한한 공허에서 시작된다. 그 안에서 가이아(대지), 타르타로스(지하세계), 에로스(사랑의 힘)가 등장하고, 가이아는 우라노스(하늘)를 낳아 세계를 확장한다. 그러나 가이아와 우라노스 사이의 자식들인 티탄족과 크로노스, 그리고 제우스 세대에 이르기까지, 신들의 계보는 항상 ‘아버지를 타도하는 아들’이라는 권력 투쟁을 반복한다. 결국 제우스가 권좌를 차지하고 올림포스의 질서를 수립함으로써 현재의 우주 구조가 확립된다. 그리스 창조 신화는 혼돈에서 질서가 생겨나되, 그 질서는 영원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권력 투쟁과 변화의 과정을 통해 다시 구성된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이 신화는 후대 그리스 철학에서 우주의 질서(로고스) 개념과 연결되며, 질서는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롭게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사고로 이어진다.

결론

각기 다른 문화권의 고대 문명들이 남긴 창조 신화는 모두 저마다의 독특한 형식과 상징을 갖고 있지만, 놀랍게도 공통된 철학을 공유한다. 그것은 바로 세계는 ‘혼돈(Chaos)’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신성한 존재나 거대한 질서의 개입을 통해 ‘코스모스(Cosmos)’로 전환되었다는 인식이다. 그 과정은 폭력, 희생, 자생, 기운의 분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지만, 그 본질은 동일하다. 고대인은 세계를 무작위적으로 발생한 공간이 아니라, 특정한 질서와 의미가 투영된 구조로 인식했으며, 그 질서 안에서 인간 또한 자기 자리를 찾고자 했다. 이 신화들 속에는 단지 세계의 시작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이유, 권력의 정당성, 사회 구조의 기원,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창조 신화는 세계에 대한 고대인의 최초의 ‘이론’이며, 지금도 우리는 그 오래된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오늘의 우주를 이해하려는 지적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